마포는대학을 응원하며...
Project through medium/미디어교육 2009/08/07 00:59 |
나의 20대. 최소한 386의 끝자락에 매달렸던 세대감성이란 것이 말이지.
조선땅이 봉건성을 탈피했는가 못했는가...신식민지라 규정해야 하는가의 말장난같은 논쟁속에 휘말려야 했다.
그래선지 내 손으로 새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망상가까운 시도를 거침없이 했어야 했다.
또한 실천없는 맹목적 지성을 비난하면서도, 결코 지성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그저 지성이란 말을 쓰고 싶었을 뿐이었을게다.
자연스레 나의 20대가 다가서거나 실현하기 힘든 그림같은 이상을 좇느라 패거리는 만들었지만 친구를 만들지 못했고,
타자의 꿈을 바라보느라 개인의 성장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반면,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내 기준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귀중함도 얻었다곤 할 수 있지.
최근에 잠깐 잠깐 수업에서 만나는 20대에게 느끼는 아주 골 깊은 실망감은 반추없이 달음질하는 비정상적(?) 활성화였다.
예1) 세미나를 연다면서 연사로 나를 초대하는 대학생들이 있었다.
흔쾌히 승낙하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주최측 학생들은 모두 노란색 단체티셔츠를 입고, 입구에서 환영인사를 하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선생님...뵙고 싶었어요"
"오시느라 힘드셨을테니 냉차(ㅋ냉차라고 쓰니 웃기지만 내가 먹은건 아주 밍밍한 아이스티였다)한잔 드세요...."
"강의실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하면서 연사를 소개하는 동영상이 나오고...큰 박수를 유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이야기가 시작되자 강의를 듣지 않았다. 복도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정작 주최하는 20대는 세미나를 멋지게 포장했을지는 모르지만 세미나의 핵심에서 스스로를 제외시키곤 단체티셔츠에 푹 빠져있었고,
현수막아래서 사진찍으면서 멋진 포즈를 연출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매우 열심히 뭔가 하고 있고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다시 만나고 싶진 않았다.
말하고 싶은 주제가 있을 때 세미나를 열어야 하고, 듣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연사를 초대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예2) 꽤 많은 대학에 설치한 **커리어센터에서 방학을 맞아 직업에 대한 특강을 했다.
각종 검사지가 동원되고, 자기 적성을 분석하여 직업선호도에 따라 연관된 직업을 탐색하기도 한다.
좋다.
뭐 취업을 위한 인터뷰 대처능력이나 세련된 자기이미지 연출법이 내 강의 전에 있단 것도 용서해 주자.
지금 우리사회는 그런 연출과 껍질에 관심이 많으니 그 정도 가벼운 조크나 거짓말은 눈감아 줄 수 있다.
하지만 원하는 직업이 무엇일까를 말하면서 나는 지나치게 민감한 실망이 생겼다.
요약하자만 다음과 같다.
"저는요...
(능력을 실현할 수 있기에 매겨진 것이 아니라)돈 많이 주고,
(노하우를 쌓아가기 위한 충분한 자기 투자가 아니라)단기간 승진할 수 있고,
(개인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자질에 대한 점검이 아니라)손가락질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일에 대한 열망이나 사회적 네트워크가 아니라)책임감이 적고,
(일의 종류와 무관하여도 크게 고려대상이 아닌)유명하고 큰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요"
좋은 선생이나 멘토, 동료를 만나면 일이 즐거워진다. 그런 즐거움의 산물에서 가장 큰 것은 자기만의 방식. 즉 일에 대한 노하우를 습득하는 것이다.
그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정한 수준에 오르면 책임이 많아지고, 책임이 무거워질 수록 연봉이 오른다.
직업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역설적인 상황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말하면서도 그 오류를 스스로 지적하지 못하는 것이...
단지 어떤 직능을 익히면 된다고 강조하는 이 사회의 문제일거라 생각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개인의 각성은 어떻게 일어나겠는가 말이다.
즉, 그것을 부추기는 대학의 문화도 문제의 한 축이겠으나 좋은 선생과 멘토와 친구를 만나려 하지 않는 개인의 무기력함에는 할말이 없어지곤 한다.
여전히 커리어센터를 오가면서 매우 열심히 살고 있지만 이런 비정상적 활성화를 목격하면 항상 기운이 빠지곤 한다.
최근 나의 20대 친구들이 희망청에서 마포는대학이라는 마포지역을 중심에 둔 20대의 교육관련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20대에 프로근성을 보이면서 도전하는 젊은이들을 칭찬해 주는 어른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취학전 아동이 어른들 칭찬받으려고 섹시댄스를 흉내낼 때 박수를 못쳐준다.
나는 청소년이 논술시험을 앞두고 사회적 이슈에 언저리를 맴돌면서 어른들에게 점수따는 모습을 볼 때 항상 가슴팍이 시렸다.
이번 마포는대학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친구들이 듣고 싶은 강의를 개설하고, 진짜 듣고 싶었기에 열심히 듣는 것...
삶의 경험이 딱 한 발 앞서는 선배와 선생의 철학을 보면서 20대에게 생겨버리고 만 직업관의 역설을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마포는대학을 함께 경험한 동료(또는 친구)에 대한 존경이 생길것을 믿는다.
일하는 동안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회의나 자기 네트워크가 가진 한계에 대한 한탄과,
100%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헛된 믿음이 깨지면서 생기는 오해와 혼란이 왜 없겠는가.
그 갈등이 찾아오는 순간 낯설어 놀라기도 하고, 해결되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강의개설하면서 튀어오르는 파토스에 감격하기도 하겠지만, 미스캐스팅이란 위험이 현실이 될 때 기운이 빠지고...등등...
이런것이 20대가 해야 하는 일. 그 자체다.
"젊어하는 고생은 돈주고도 못산다" 고생을 하란건 아니지만 이런식의 억지교훈을 잘 해체해 음미하다보면...가끔 움찔하는 감동도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고생이냐 겠지만 말이다.
반면...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는 어떤가. 인생 별거 없다....초등학교 교사였다가 퇴직한 60대인 내 친구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는 실버악단을 만들어 트럼펫을 불고 연주를 하며 스케이팅을 즐긴다.
하지만 젋어서 하던 연주회와 스케이팅이 가장 신나고 즐거웠단다. 그때가 아니면 못하는 놀이가 있다. 젊어서 놀라는거지.
그 두가지 모두를 놓치곤 한다. 결국 두 문장 모두를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from. 이노상데쓰!
조선땅이 봉건성을 탈피했는가 못했는가...신식민지라 규정해야 하는가의 말장난같은 논쟁속에 휘말려야 했다.
그래선지 내 손으로 새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망상가까운 시도를 거침없이 했어야 했다.
또한 실천없는 맹목적 지성을 비난하면서도, 결코 지성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그저 지성이란 말을 쓰고 싶었을 뿐이었을게다.
자연스레 나의 20대가 다가서거나 실현하기 힘든 그림같은 이상을 좇느라 패거리는 만들었지만 친구를 만들지 못했고,
타자의 꿈을 바라보느라 개인의 성장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반면,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내 기준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귀중함도 얻었다곤 할 수 있지.
최근에 잠깐 잠깐 수업에서 만나는 20대에게 느끼는 아주 골 깊은 실망감은 반추없이 달음질하는 비정상적(?) 활성화였다.
예1) 세미나를 연다면서 연사로 나를 초대하는 대학생들이 있었다.
흔쾌히 승낙하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주최측 학생들은 모두 노란색 단체티셔츠를 입고, 입구에서 환영인사를 하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선생님...뵙고 싶었어요"
"오시느라 힘드셨을테니 냉차(ㅋ냉차라고 쓰니 웃기지만 내가 먹은건 아주 밍밍한 아이스티였다)한잔 드세요...."
"강의실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하면서 연사를 소개하는 동영상이 나오고...큰 박수를 유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이야기가 시작되자 강의를 듣지 않았다. 복도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정작 주최하는 20대는 세미나를 멋지게 포장했을지는 모르지만 세미나의 핵심에서 스스로를 제외시키곤 단체티셔츠에 푹 빠져있었고,
현수막아래서 사진찍으면서 멋진 포즈를 연출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매우 열심히 뭔가 하고 있고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다시 만나고 싶진 않았다.
말하고 싶은 주제가 있을 때 세미나를 열어야 하고, 듣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연사를 초대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예2) 꽤 많은 대학에 설치한 **커리어센터에서 방학을 맞아 직업에 대한 특강을 했다.
각종 검사지가 동원되고, 자기 적성을 분석하여 직업선호도에 따라 연관된 직업을 탐색하기도 한다.
좋다.
뭐 취업을 위한 인터뷰 대처능력이나 세련된 자기이미지 연출법이 내 강의 전에 있단 것도 용서해 주자.
지금 우리사회는 그런 연출과 껍질에 관심이 많으니 그 정도 가벼운 조크나 거짓말은 눈감아 줄 수 있다.
하지만 원하는 직업이 무엇일까를 말하면서 나는 지나치게 민감한 실망이 생겼다.
요약하자만 다음과 같다.
"저는요...
(능력을 실현할 수 있기에 매겨진 것이 아니라)돈 많이 주고,
(노하우를 쌓아가기 위한 충분한 자기 투자가 아니라)단기간 승진할 수 있고,
(개인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자질에 대한 점검이 아니라)손가락질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일에 대한 열망이나 사회적 네트워크가 아니라)책임감이 적고,
(일의 종류와 무관하여도 크게 고려대상이 아닌)유명하고 큰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요"
좋은 선생이나 멘토, 동료를 만나면 일이 즐거워진다. 그런 즐거움의 산물에서 가장 큰 것은 자기만의 방식. 즉 일에 대한 노하우를 습득하는 것이다.
그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정한 수준에 오르면 책임이 많아지고, 책임이 무거워질 수록 연봉이 오른다.
직업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역설적인 상황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말하면서도 그 오류를 스스로 지적하지 못하는 것이...
단지 어떤 직능을 익히면 된다고 강조하는 이 사회의 문제일거라 생각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개인의 각성은 어떻게 일어나겠는가 말이다.
즉, 그것을 부추기는 대학의 문화도 문제의 한 축이겠으나 좋은 선생과 멘토와 친구를 만나려 하지 않는 개인의 무기력함에는 할말이 없어지곤 한다.
여전히 커리어센터를 오가면서 매우 열심히 살고 있지만 이런 비정상적 활성화를 목격하면 항상 기운이 빠지곤 한다.
최근 나의 20대 친구들이 희망청에서 마포는대학이라는 마포지역을 중심에 둔 20대의 교육관련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20대에 프로근성을 보이면서 도전하는 젊은이들을 칭찬해 주는 어른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취학전 아동이 어른들 칭찬받으려고 섹시댄스를 흉내낼 때 박수를 못쳐준다.
나는 청소년이 논술시험을 앞두고 사회적 이슈에 언저리를 맴돌면서 어른들에게 점수따는 모습을 볼 때 항상 가슴팍이 시렸다.
이번 마포는대학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친구들이 듣고 싶은 강의를 개설하고, 진짜 듣고 싶었기에 열심히 듣는 것...
삶의 경험이 딱 한 발 앞서는 선배와 선생의 철학을 보면서 20대에게 생겨버리고 만 직업관의 역설을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마포는대학을 함께 경험한 동료(또는 친구)에 대한 존경이 생길것을 믿는다.
일하는 동안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회의나 자기 네트워크가 가진 한계에 대한 한탄과,
100%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헛된 믿음이 깨지면서 생기는 오해와 혼란이 왜 없겠는가.
그 갈등이 찾아오는 순간 낯설어 놀라기도 하고, 해결되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강의개설하면서 튀어오르는 파토스에 감격하기도 하겠지만, 미스캐스팅이란 위험이 현실이 될 때 기운이 빠지고...등등...
이런것이 20대가 해야 하는 일. 그 자체다.
"젊어하는 고생은 돈주고도 못산다" 고생을 하란건 아니지만 이런식의 억지교훈을 잘 해체해 음미하다보면...가끔 움찔하는 감동도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고생이냐 겠지만 말이다.
반면...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는 어떤가. 인생 별거 없다....초등학교 교사였다가 퇴직한 60대인 내 친구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는 실버악단을 만들어 트럼펫을 불고 연주를 하며 스케이팅을 즐긴다.
하지만 젋어서 하던 연주회와 스케이팅이 가장 신나고 즐거웠단다. 그때가 아니면 못하는 놀이가 있다. 젊어서 놀라는거지.
그 두가지 모두를 놓치곤 한다. 결국 두 문장 모두를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from. 이노상데쓰!